친정 엄니

어떤 날 2004/04/06 10:34

어제 낮에 목욕탕에 갔을 때 일입니다.
목욕을 마치고,  선풍기 바람에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엄니, 가만 있어봐유~  아이, 이쁘다~ 머리 뽀글뽀글 잘 나왔네... "

한 할머니의 음성이 들립니다.

순간 고개를 돌려 보니 평상 위에 두 다리를  쭈욱 뻗은 채 앉아 있는 노할머니,
그리고 노할머니의 머리를 큰 도끼빗으로 몇 차례 빗겨내리는 속옷 차림의 또 다른 할머니...
(며칠 전 미용실에서 퍼머라도 한 모양입니다. ^^ )


백발의 노할머니는  검정 바지와  꽃무늬 블라우스, 연두색 점퍼까지 곱게 챙겨 입으시고
엄마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온 일곱살난 어린 아이처럼  가만히 앚아 이런저런 눈치를 봅니다.


지나가던 다른 할머니 " 친정 엄마유?"


"야, 울 엄니유...  젊었을 때도 참 고왔는디, 지금도 피부가 매끈허니 저보다 낫지유? (웃음)
내가 시엄니하고  산  날들이 더 많은데 시엄니는 이리 안되데......
당신 살 떼서 낼로 만들어 키운 마음을  내 살 떼서 내 자식 새끼 만들어 보니 알겠더만유...
울 엄니... 참 이쁘다.... "


그 말에 노할머니 말없이 웃기만 하십니다.


뒤늦게 친정 어머니를 모시게 된 것이 죄스럽고, 반갑고 그런지 반백발의 할머니 연신 곱다곱다 울엄니 곱다시며 노할머니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어 내리십니다.  

로션도 발라주고,  귀청소도 해드리고...


그 옛날엔 노할머니가 따님을 마냥 이뻐라하며 저렇게 깨물고 보듬고 하셨겠지요.
세월이 흘러 지금은 반대의 풍경이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2004/04/06 10:34 2004/04/0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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