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동안

from 쓰다 2004/06/02 03:33

최근에 자주 만나는 선배가 있다.
선후배 관계의 친밀함도 있겠거니와 업무적(?)인 일로 잦은 만남이 있었다.

그런데 이 선배는 약속을 하면 십분이고 이십분이고 매번 늦는다.
열 번에 한 번 제 때 나올까 내지는 열 번에 한 번 내가 늦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 늦음이란 것은 십분을 넘긴 적이 없고, 사전에 조금 늦겠다는 안내를 한단 말이다.

하지만, 무슨 배짱에서인지 이 선배는 좀 늦겠다는 통보를 결단코 하지 않는다.
신세대들처럼 애교섞인 문자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전화 한 통 일찌감치 해주면 되는 것을..
핸드폰도 있겠다,  더더군다나 단축키도 있지 않은가. 참고로 내번호는 91번을 꾸욱~ 누르면 될 것이다.
그리고는 도착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반갑게 맞는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ㅡ/ㅡ

(평소 나는 시간 약속 안지키는 사람을 싫어한다. 아니 싫어한다기 보다는 매너없는 사람으로 분류해 신뢰감을 마음속에서 털어내는 편이다.
그래도,  상대를 기다리면서 조급해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는 편은 아니다. 그 시간에 나름대로도 바쁘다.  이생각 저생각 참 생각할 것도 많더라.)

아.. 다시 선배얘기로 돌아와서,

자주 보게되면서, 자주 늦고, 자주 기다리고...
그만큼 생각이 많아지게 되었는데, 이 기다리는 일이십분이 이제는 아쉬워졌다는 것이다.

생각의 주제와 내용은 내맘대로다.  
한 길에 서서 기다리면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사람살이에 대해 생각하고..
큰 건물 앞에서 기다리면  현관 앞 대형 조형물 디자인도 감상하고, 예쁘게 꾸민 화단의 꽃을 보며 꽃향기와 그 색감에 감탄을 하고..
그러다보면, 나름대로의  생각의 그릇이 넓어진다. (뭐, 딴지 걸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렇더만)

연락없이 마냥 기다리는 것이 이제는 더 좋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이 선배한테 화를 내기보다는 한 번 업어주고 싶다.

언제 진지하게 시간내서 생각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쩌다 기다림의 강요를 받을 때.. 그때 하늘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재미난 표정도 보자.



* 덧붙임 :

아.... 이 선배,  
오늘 서점가기 약속에도 늦었다..  
기다리는 동안 생각이 나서 지금 이 글의 윤곽을 잡으려 수첩에다 메모를 하는데,
어느새 뒤에 와서 보고는  "야이놈아,  내 흉보냐?"  꿀밤을 주더라는...


선배는 알까.... 선배를 업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

2004/06/02 03:33 2004/06/02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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