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어떤 날 2005/12/09 04:48
"엄마야"

몇 달 전 출근길 지하철에서 저는 말 그대로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의 놀람과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무언가가 제 다리를 스쳐 지나갔거든요. 부드러우면서도 물컹(?)한 생물체가 스르륵하고 제 종아리를 스치고 갔으니 아침 출근길에 이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꺄악~ 하고 소리도 못 지르고 철렁 내려앉은 심장을 추스리기도 바쁜데 본능적으로 아래쪽으로 내려다 본 저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지요.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맹인 안내견이었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크고 황금빛이 나는 맹인 안내견이었던 거죠. 제 또래로 보일 법한 아가씨 선두에 서서 함께 내리는데 솔직히 너무 신기한 나머지 나는 안내견을 쓰다듬을 뻔 했습니다. 주인을 위해 묵묵히, 충실히 갈 길을 찾아가는 그 맹인견이 대견스럽고 훌륭하다라는 생각보다 '와! 맹인 안내견을 보다니..' 하는 신기함이 더 컸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면 안되는뎅...잉.

그 이후 참 신기한 것이 2분 간격으로 밀려오는 지하철 배차간격에도 불구하고  이 씩씩한 단짝을 자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항상 같은 량에 오르나봐요. 저도 늘 같은 위치에서 타거든요^^; 자주 보게되니 이제 신기한 것 보다는 그 안내견이 대견스럽고.. 괜히 제가 뿌듯하고.. 그 아가씨도 장애를 가졌지만 편안해 보이고 그런다는 겁니다. 한 번 두 번 관심을 가지고 좋은 생각으로 바라보니 그새 마음으로나마 친해졌나하는 생각이 오바해서 들 정도입니다. ^^;  그들이 내리는 곳은 환승 구간이라 사람들로 몹시 붐벼서 제 때 내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데, 이제는 제가 그들을 위해 다른 승객들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길 내주세요" 하고 작게 속삭이며 부탁을 하기도 한답니다. ^^

그런데, 오늘 지하철 완전 대박 났습니다. 사람 엄청 많았지요. -0-;;  저도 축구공 마냥 이리저리 떠밀려다녔는데 옆을 보니 그 단짝이 못내리고 있는 겁니다. 멍멍 짖을법도 한데 짖지도 않고 머리로 그 많은 사람들 틈을 헤쳐나가는 안내견과 연신 "내립니다, 조금만 비켜주세요"하며 너무나 미안해 하는 그녀... 멀쩡한 나도 복잡한 곳에서 이렇게 힘든데, 그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조금씩만 양보하고 배려하며 그리 삽시다.



2005/12/09 04:48 2005/12/09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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