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from 읽다 2008/10/07 18:22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 척 만 척하고 이렇게 점잖게 지내던 터이련만 오늘로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항차 망아지만한 계집애가 남 일하는 놈 보고.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듸?"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너 일하기 좋니?"
  "한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았다가 남이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 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너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있는 큰 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 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랬다. 우리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근 삼 년 째 되어 오지만 여태까지 가무잡잡한 점순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다시 집어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힁허케 달아나는 것이다. 어쩌다 동리 어른이,
  "너 얼른 시집을 가야지?" 하고 웃으면
  "염려 마서유, 갈 때 되면 어련히 갈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점순이었다. 본시 부끄럼을 타는 계집애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 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바구니로 한번 모지게 후려쌔리고 달아날 지언정.
  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주는 감자를 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 주면 그냥 주었지 '너 집엔 이거 없지'는 다 뭐냐. 그렇잖아도 저희는 마름이고 우리는 그 손에서 배재를 얻어 땅을 부침으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집이 없어서 곤란으로 지낼 제 집터를 빌리고 그 위에 집을 또 짓도록 마련해 준 것도 점순네의 호의였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농사 때 양식이 딸리면 점순네한테 가서 부지런히 꾸어다 먹으면서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열 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수군수군하고 붙어 다니면 동리의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준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점순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 놈의 계집애가 까닭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


- 김유정 <동백꽃> 가운데 


-----------------   괜히 말 걸고 싶고, 보기만 해도 웃음 나고, 좋은 거 하나라도 챙겨 먹이고 싶고, 그러다 별 의미없는 말 한마디에 마음 상하고... 에그그, 사랑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 ♡

동백꽃,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 ^^)b

2008/10/07 18:22 2008/10/0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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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바나나 2008/10/07 23:2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무리 봐도 연애를 시작하셨나 보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