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습니까?

from 쓰다 2009/01/05 16:41

토요일. 필름 현상을 위해 충무로에 갔다. 정말 오랜만의 충무로 나들이다. 카메라 속에서 반년이나 묵혀 있던 필름을 포함해서 흑백, 슬라이드 등 몇 통을 맡겼다. 현상만을 부탁했지만 월요일 저녁에나 찾을 수 있단다. 예전에는 토요일 저녁까지 현상작업을 했었는데 주5일제로 바뀐 지가 한참 되었다고 하니 내가 사진을 안 찍은 지가 오래긴 한가 보다. 현상된 필름은 그냥 우편으로 보내달라며 주소를 적어 주고 현상소를 나왔다.

지하철역을 가기 위해 지나는 길목에 자그마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등산용품을 주로 파는 가게인데 유리문 밖에 이것저것 많이 진열을 해놓았다. 호기심 발동에 좌판 앞에 서서 요리조리 만져보며 구경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가방을 하나 발견했다. 주인 아저씨를 불러 가격은 얼마냐. 품질은 믿을만 하냐 따위의 싱거운 질문들을 하다가 싸게 주면 사겠다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으... 또 충동구매인 것이냐... -.-;;)

맨처음 6만원을 부르시는데 좀 더 깎아달라고 했더니 원래 8만원은 받아야 되는 건데 입맛을 다시면서 5만5천원에 흥정을 마무리 하셨다. 잘 깎는 성격이 못 되는 나는 그럽시다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카드를 긁었다. 3분, 5분이 지나고 10분이 넘어가는데 승인이 안 떨어진다. 내 카드가 잘못 된 거냐하고 물었다. 카드는 이상이 없고 통신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며 아저씨가 미안해 했다. 좀 더 기다려도 연결이 안 되자 아저씨가 좋은 생각이 있다면서 나에게 카드를 돌려줬다.

갑자기 명함을 꺼내어 뒤집더니 계좌번호를 적는 것이 아니냐. 그것을 내게 주며 집에 가면 자동이체를 해 달라고 했다. 놀란 나는 아니 나를 어찌 믿고 돈도 안 받은 채 물건을 그냥 주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사람 안 믿고 어찌 사냐면서 떼 먹을 거냐고 되려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5천원 더 빼주겠다 했다.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다 싶어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아저씨께 건넸다. 2만원이었다. 저녁께나 들어갈 것 같으니 3만원은 내 있다 꼭 통장으로 넣어드리겠다 거듭 약속을 하며 내 연락처를 적어주고 가게를 나왔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다 저녁에 송금을 하고 문자를 보냈다. 곧이어 고맙게 잘 받았다며 아저씨가 답문을 보내왔다.


----------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또 장삿속이라 한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인데 아저씨의 행동에 그 순간 감동(?)을 받았다.

* 그런데 집에 와서 가방을 보다가 5만원 값어치가 될려나? 비싸게 덥석 사버린 건 아닐까?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 메보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작 나는 왜 믿지를 못하냐?"고 말이다. ( -_-)ㅋ


2009/01/05 16:41 2009/01/0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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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otho 2009/01/05 18: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요 에피소드 재밌는데요.
    오랜만에 와서 새해 인사나 드리고 가야겠네요. 올해 이루고자 하는 일 모두모두 이루시길 바랄게요~ ^^

    • 자박 2009/01/06 08:58  address  modify / delete

      오웃~ 클로쏘님 올만이예요. 잘 지내시쥬?
      새해 복 엄청나게 많이 받으세유~

  2. 江湖人 2009/01/05 21: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사람을 척~ 보면 믿겠는지 못믿겠는지...통박이 나온답니다. 아마 그 아저씨께서도...
    물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요. ^^

    • 자박 2009/01/06 09:01  address  modify / delete

      저 한테는 새로운 느낌이긴 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
      제가 그 동안 너무 딱딱하게 살아왔는 지도 모르죠.. 헤헤..

  3. 너바나나 2009/01/12 01:0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 저렇게 장사하는 분이 아직도 계셨다니. 그나저나 자박님은 어서 이런 훈훈한 체험들을 하시는지~

    추신수: 가방은 2만원짜리일 수도.. ㅎㅎ

    • 자박 2009/01/12 14:08  address  modify / delete

      가방도 쓰기 나름이라는 도를 깨우쳤다는. 오호호호... 잘 쓰면 5백만원 값어치를 할 것이고, 안쓰면 5백원어치도 안되겠쥬...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듯~ 푸핫. 새로 산 저 가방은 최소 5십만원어치의 값을 하도록 단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