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이야기

from 쓰다 2010/08/06 01:04

모처럼의 휴가 중 친오빠와 함께 예술의 전당 미술관을 찾았다. 저 유명한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방학에 휴가철이라 그런 듯싶었지만 그 수는 내가 미술관이란 곳을 찾은 이래 최고였다.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사고 번호표라는 것을 받았다. 은행처럼 말이다. 말 그대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번호대가 되어야만 입장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뭘 이렇게까지나 하나 싶었지만 우리와 같은 처지로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어쩔 수 없겠구나하고 쉽게 순응키로 하였다. 때가 때이니만큼.

그런데 대기 예상시간이 무려 50분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아, 비좁은 실내에 앉을만한 곳은 없고, 밖에 나가자니 너무 더워 그대로 직화구이가 될 것만 같았다. 불현듯 피신할 곳이 떠올랐다. 서예 미술관! 안타깝긴하지만 그 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를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빠와 나는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입구부터 썰렁한 것이 포스터만 덩그러니 그 출입구를 안내하고 있었다. 너무 조용해서 문너머로 목만 빼꼼히 내민 채 관람이 가능하냐고 안내자에게 물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매우 반갑게 맞아주어 되려 우리가 황송할 지경이었다.

주제는
"붓 길, 역사의 길"(한일강제병합 100년)이었다. 고종황제의 필체를 시작으로 안중근의사의 "국가안위 노심초사" 유묵, 백범김구선생의 "헌신조국", 기미독립선언문 등등 식민시대에 조국의 독립과 국민의 단합을 외친 위대한 유산들이었다. 대부분 한자와 한문이어서 완벽한 해석을 하기는 많이 어려웠지만 그 분들의 마음과 절실함은 피부에 와닿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50세를 넘기신 듯한 아저씨, 외국인 커플, 그리고 우리 둘 뿐이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빠에게도 넌지시 말하니 역시 관람객이 너무 없어 씁쓸하다고 하였다. 퓰리처상 사진전의 관람객이 너무 많아 대기 중에 시간 때우기로 찾아간 곳이었는데 막상 부끄럽고 크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후원이 적어 홍보가 많이 못 된 탓도 있겠지만 모두들의 무관심이 이렇듯 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아픈 역사 속에서 나라와 국민,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희생하셨던 옛어르신들의 깨우침이 아닌가. 그 분들이 계셨으므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인데 관심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살짝 화가날 지경이었다.

단순히 퓰리처상 사진전과의 방문객 수 대조만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다. "나는 봤네"하고 자랑삼아 즉흥적으로 내 나라 추켜세우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보고싶은 전시는 얼마든지 봐도 좋다. 한 시간 두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하지만 위와 같은 기획전은 아픈 역사를 지닌 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그 시련을 이겨내고 이 나라를 지켜준 우리 선조들에게 바치는 고마움의 표시로서 한 번쯤은 관람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리 스스로에게 약간의 의무감을 지워보자. 가슴 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끌어오르는 뭉클함과 애틋함을 시작으로 소름 돋는 애국심에 깜짝 놀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퓰리처상 사진전을 보았다. 전시장 안에서도 사람들에게 떠밀려 사진을 천천히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

-.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고
-. 아이들은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 전화벨소리는 울리고
-. 또 그 전화 받아 큰소리로 통화하고
-. 가이드라인 안 깊숙히 들어가서 뒤에 사람 못 보게 사진 가리고
-. 손으로 사진 만지고
-. 연인들 애정행각 하고
-. 말 못하는 아이 업어달라 칭얼대고
-. 사람 많으니 실내 온도 높아져 덥고
-. 안내원 있어도 위 사항들 제재도 안 되고(인원이 부족했거나 관심없거나 자포자기였거나)
-. 퓰리처상 사진전 입장료:1만원/ 붓길 역사의길 입장료:5천원(-_-);



-2010.08.04.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 반성하는 마음과 이제껏 제일 곤혹스러웠던 관람 후기.



2010/08/06 01:04 2010/08/06 01:04

Trackback Address >> http://www.zavak.com/trackback/40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황정인 2010/08/17 22:0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퓰리처상 사진전.. 나도 넘 보고싶었는데... 이런~ 분위기가 썩 -.-
    오랜만에 좀 일찍 퇴근해서 이리저리 즐겨찾기 해 둔것 눌러 보고 있는 중이야..

    요기 열대야, 매연냄새.. 장난 아니심~ ㅠㅠ

    요즘 지마켓에서.. 보고싶은 책들 막 주문해댄다.
    스트레쓰를 요런데 다 푸는지.. 읽지도 않으면서 책만 쌓아두고 흐믓해하고 있당.
    뭐 이래 사놓음 언젠가는 보게 되겠제.. ㅋㅋㅋㅋ

    정아야.. 더운 여름 잘 보내공 언능..가을이 왔음 좋겠네..

    • 자박 2010/08/23 23:19  address  modify / delete

      여름도 싫고, 겨울도 싫고, 맨날맨날 봄이었음 좋겠다.
      이민 갈까? 봄나라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