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에게

from 쓰다 2011/04/03 22:45

출근길 지하철 환승 구간 중 바닥에 뒹구는 단추 하나를 보았다. 크기도 제법인 것이 아마도 외투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상아색이 참 곱다.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또 하나의 단추를 보았다. 역시 겉옷의 단추 같다. 이번에는 황금빛이다.

이사람 발에 채이고 저사람 발에 채이고, 저 앞으로 채였다가 다시 뒤로 날아가고 그 모습이 짠하다. 나도 내 갈 길이 바쁜 터라 일부러 단추의 운명을 끝까지 지켜 볼 수 없음이 아쉽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단추가 떨어져 나가는 지도 모른 채 내지는 남의 단추를 본의아니게 떨어지게 했는지도 모른 채 저렇듯 치열하고 피곤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말이다. 아, 남들도 똑같구나.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단 마음이 일었다.


- 2011.04.01. 아침. 서울 지하철 고속버스터미널역 7호선-3호선 환승 중.


치열한 인간들의 삶 속에서 장렬히 운명을 달리한 단추들에게.

말 그대로 비명횡사요, 따지고 보면 참으로 비참한 최후다. 아침 출근길 당장에야 살아남았다한들 옷에 남은 친구들 또한 그 하루종일 얼마나 노심초사 위태로웠을까. 걱정대로 이내 생을 마감할 지도 모르겠구먼. 당신들이 떨어져 나갔는지도 모를 무심한 주인이거나 엉뚱한 단추라도 꿰매어 놓을 색다른 패션 감각을 지닌 주인이지 않은 이상 뻔뻔스럽게 옷에 붙어 있을 수가 없을 테지. 하지만, 떨어져 뒹굴고 아직은 옷에 붙어 있는 자네들이 오늘 아침 나에게 남들처럼 치열하게 살라고 큰 격려를 하였으이. 비록 우스운 꼴의 마지막 가는 길이지만 달리 보면 좋은 일 한 뒤 최후를 맞이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들의 죽음이 마냥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알아주구려. 내 길을 걷다 또 이런 경우를 겪으면 잠깐이라도 묵념하며 그대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지친 삶을 재정비토록 하겠네. 부디 안식을 취하시길.




2011/04/03 22:45 2011/04/0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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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파스 2011/04/04 11: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너무 열심히 사시는 거 아닌감유? 좀 천천히 사세유

    • 자박 2011/04/09 22:49  address  modify / delete

      말이 그렇지 딱히 제가 열심히 살고 있지는 않아요.
      그저 뭔가 대충 살고 있는 게 아닌가 ...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에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