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氏의 고질병

from 쓰다 2007/08/13 11:20
내게는 불치병이 하나 있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발병(?)하는...
심심. 무기력. 권태. 단절...

에잇, 돌아오는 주말에는 어디로든지 가버릴테다.



- 이상의 <권태> 끝 문.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인연이나 관계를 끊다)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조차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권태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凶猛)한 형리(형을 집행하는 사람)처럼-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 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 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 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한 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 반추하면서 끝없는 나태(懶怠-게으름)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平常-평상시)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면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좁은 방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2007/08/13 11:20 2007/08/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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